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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2020년 7월 7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 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있는 특허도 여럿 있었고 앞으로도 세상에 알릴 좋은 아이디어도 가득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 자신은 월급쟁이로 별 볼 일 없이 살고 있고 회사만 자신의 아이디어로 큰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이 문제로 고민한 형제님은 드디어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알릴 수 있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론을 말하면 “망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고 또 좋은 아이디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전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며, 여기에 실천에 옮기려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 혼자서 다 하겠다고 생각하니 잘 될 리가 없었던 것이지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긴 회사 사람들의 도움을 그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기 생각의 틀에만 갇혀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나 혼자만으로 모든 것이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너’가 있어야 했고, ‘우리’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벗어나 남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는 주님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부정하고 보는 못된 심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행적은 가엾이 여기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는 자신의 기준만을 내세우면서 예수님을 무조건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이 옆에 있어도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주시는 풍성한 선물을 거두도록 도와줄 목자가 없는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십니다. 그래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주십사고 청하여라.” 하십니다. 

수확을 할 일꾼을 알아서 보내주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당신이 가엾이 여기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면 말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먼저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보시고 알아서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스스로 청할 수 있는 지혜와 올바른 판단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이기적이고 욕심 가득한 마음은 내려놓고, 겸손하고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먼저 내 이웃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때 주님과도 함께 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도 그들만의 힘든 전투를 하고 있다(플라톤). 

빛이신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한 번 더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간


사제들이 성당에서 입고 있는 검은 원피스(?)를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밑에까지 내려오는 옷’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수탄(Soutane)에 어원을 둡니다. 이 수단은 제의와 함께, 사제와 일생을 함께 하는 옷으로 죽음 후에는 수의가 됩니다. 

신학교 4학년 때 이 수단을 입게 됩니다. 그래서 3학년 때 수단을 맞추는데 가격이 25만 원입니다(지금으로부터 27년 전 가격입니다). 너무 비쌌습니다. 당시 대기업 초임 연봉이 1,200만 원 정도 했고, 대학 등록금이 100만 원 정도 할 때 이니 당시의 25만 원은 너무나 큰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되고 나니 이보다 싼 옷이 없는 것 같습니다. 27년 전에 맞춘 수단을 아직도 입고 있으니 말입니다. 또 끌러지 셔츠만 있으면 다른 옷은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이 정장이고 또 평상복이기 때문입니다. 비싸 보이지만, 가격대비 효율을 따져보면 가장 싼 옷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의 판단이 순간에 머무르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지금뿐 아니라 미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옷만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바른 판단을 위해 한 번 더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 형님이 콜드브루 기계를 직접 만들어 주셨습니다. 신기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