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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2020년 7월 9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 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어떤 자매님께서 요즘 건망증이 심해졌다면서 걱정을 하십니다. 분명히 무엇을 하려고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냥 멍하니 가만히 있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무엇을 하러 주방에 가기는 했는데 기억나지 않아서 그냥 물 한 잔만 마시고서 다시 거실로 나왔다고 하십니다. 왜 이렇게 기억나지 않는지, 혹시 치매의 시작이 아니냐면서 걱정을 하시더군요. 

기억이 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알 수 없으면 찾을 수가 없습니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면 답답한 마음만 가득해집니다. 기억이 났을 때, 또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답답함은 사라지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걱정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더 걱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주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 답답한 마음을 간직한 채 사는 것입니다. 

세상의 창조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알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이 많습니까? 이런 마음을 벗어던지고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가는 방법은 주님을 알고 주님을 기억하는 것뿐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의 파견에 사도들은 철저하게 순종합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는 명령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도 평화를 빌면서 주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했습니다. 사도들의 이 전교 여행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모든 것을 비우는 행동에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모습, 이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모습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제자들을 통해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지상의 모든 보물은 주님께로 가는 데 해가 될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라는 옷만 있으면 됩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고백한다면, 내가 버려야 할 이 세상 것은 무엇인지를 떠올려 보셨으면 합니다. 혹시 이것도 가져야 하고, 저것도 지녀야 한다면서 꼭 움켜쥐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을 붙잡을 손이 없다며 그냥 주님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모든 것을 버려야 세상에 기쁜 소식을 용기 있게 전할 수 있으며, 내가 세상의 것에서 벗어날 때 주님의 평화를 전해줄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의식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능력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보다 더 용기를 주는 것은 없다(헨리 데이비드 소로).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님. 

행복을 가리고 있는 것은 누구?


이상하게도 졸음이 계속 몰려옵니다. 읽고 있는 책이 지루한 것도 있겠지만, 너무 일찍 일어나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창문이라도 열어 환기하려고 창문을 가리고 있었던 블라인드를 걷었습니다. 그 순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너무나 예뻤고, 그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세 그루의 은행나무는 멋진 조화를 보여 주었습니다. 

평상시 햇빛이 들어온다고 블라인드로 가리고 있었던 창문이었습니다. 이 블라인드를 걷어내고 나니 평상시 쉽게 볼 수 없었던 풍경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됩니다. 행복했습니다. 

이 행복을 그동안 누가 막고 있었던 것일까요? 블라인드를 친 사람이 저였으니 당연히 저입니다. 행복을 스스로 가리고 있던 ‘나’였습니다. 

지금 행복을 스스로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 앞을 가리고 있는 것을 걷어낼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제자들을 파견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