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빠다킹 신부

2020년 7월 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복음 마태 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형편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우리말은 무엇일까요? 답은 ‘철부지’입니다. 이 단어를 유심히 보면 농경시대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농경시대에 계절(철)의 변화와 흐름을 제대로 알지 못해(부지 不知) 농사를 망치는 사람을 ‘철부지’라고 한 것입니다. 농경시대의 이 단어가 지금에까지 전해져서 삶의 변화와 흐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농경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절의 변화와 흐름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를 알지 못하면 농사를 망쳐서 쫄쫄 굶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변화와 흐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기쁘고 힘차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 삶의 변화와 흐름은 항상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과 함께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게 될 때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보다 세상을, 그분의 뜻보다는 내 욕심과 이기심이라는 뜻을 채우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우리 모두 철부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 그 철부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억합니다. 한국 최초의 사제로 1845년 8월 17일 사제서품을 받고서 그 다음해 9월 16일 한강 새넘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당시의 나이가 서른이 되지 않았으니, 너무 젊었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라 할 수 있는 나이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해의 칼날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 것에 뜻을 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께만 뜻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의 변화와 흐름을 주님께 맡길 수 있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주님 말씀에 굳은 믿음을 가지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지요.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철부지처럼 끊임없는 걱정 속에서만 살아가고, 조금이라고 어렵고 힘들면 쉽게 포기하고 좌절했던 것은 아닐까요? 더군다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주님께 불평불만을 던지면서 주님 곁을 떠나는 것을 손바닥 뒤집듯이 했던 것이 아닐까요?

더는 철부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향하는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이 세상의 모든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멀리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신 철저히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백범 김구). 

고진호(요셉) 작, 성 김대건 안드레아. 

책 읽는 마을.


책을 안 읽으면/ 저주 받습니다. 
누군가 말했다. 
왜?
책을 안 읽으면/ 쓰던 물건 똑같이 쓰고/ 
하던 생각 똑같이 하고/ 놀던 동네 못 벗어나는/
저주를 받습니다.
누군가가 말했다.
!!!

차동엽 신부님의 유고시집에 있는 시입니다. 책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셨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책을 출판하셨나 봅니다. 

더워서 책을 읽기 힘들다고,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기 힘들다고, 일이 많아서 책을 읽기 힘들다고…. 계속해서 이유를 만듭니다. 이런 습관이 주님을 따르지 못하는 이유도 쉽게 만들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요? 

갑곶성지에 모셔져 있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