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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2020년 7월 6일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 9,18-26

18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20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21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23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24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25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26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지난 3월, 코로나 19로 세계가 시끄러울 때, 성지는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봉안당 시설과 지하 성당 리모델링을 하고 있었습니다. 공사를 하면서 자주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설계도면입니다. 이 설계도면으로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설계도면과 똑같이 공사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설계도면만으로는 완성된 모습을 제대로 상상하기가 힘들더군요. 내부 실내장식을 하나씩 하면서 점점 완성된 모습이 만들어져 갑니다. 

주님을 알아가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기도 몇 차례 하고, 성경을 조금 읽었다고 해서 주님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행했을 때, 조금씩 주님과 가까워지면서 또 주님에 대해 선명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의 최종 목적지라는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두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죽어가는 소녀를 살리시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부인의 치유입니다. 아픈 이가 온전하게 되고, 죽은 이에게는 생명이 돌아옴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혈루증을 앓고 있는 부인의 모습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혈루증을 앓고 있었던 열두 해라는 시간을 보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아마 병으로 자신의 몸이 힘든 것을 떠나서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기가 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병을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던 때였기에, 더군다나 피를 흘리는 부정한 병을 가졌으니 사람들이 보여주는 경멸의 시선이 얼마나 힘들고 두려웠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 곁에 가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큰 용기가 있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죄 많은 여인이라면서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조차 자신을 죄인이라면서 공개적으로 비난할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용기를 내어 주님께 몰래 다가섭니다.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자신을 보살펴 주실 것이라는 믿음, 다른 사람들처럼 비난하기보다는 이해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 죄인의 삶이 아닌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내게도 가능하다는 믿음…….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 9,22)

믿음은 자신 없는 상황에서도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주님께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청을 합니다. 이 부분은 주님의 몫이 아닌, 우리의 몫인데 말입니다. 

용기를 내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이 용기를 통해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으며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작이 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후회’,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후회없는 선택’.(김이현)

베로네제, 혈루증 여인을 고치시는 예수.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


5월 4일, 갑곶성지에 있는 ‘천국의 문’ 봉안당을 시작하면서 많은 분이 성지를 방문하셨고 지금도 계속해서 방문하십니다. 아마 수도권 지역 내에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봉안당 모두가 만장 되었고, 거룩한 순교자의 정신이 새겨진 갑곶성지 내에 있기 때문이겠지요.

어느 날, 아침 일찍 연세 있으신 두 분과 젊은 자매님 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봉안당 안내를 하는데, 연세 있으신 어르신 한 분이 옆에 있는 젊은 자매님을 가리키며 “이 아이 몰라요?”라고 하십니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저로서는 도대체 누구인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 ‘연예인인가?’ 싶었지만 알 수가 없어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텔레비전을 보지 않아서 누구신지 잘 모르겠네요.”

유명한 성악가였습니다. 얼마 전에는 유명한 오페라의 주연까지 맡아서 호평받은 것으로 인터넷에 나와 있더군요. 그러나 저는 몰랐습니다. 

모두에게 잘 알려진 사람이지만 몰라본 이유는 제가 클래식에 문외한이고 방송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알려는 노력이 없었으니 당연히 알 수 없었습니다.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려는 노력 없이 주님을 알게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하십니까? 

일리아 레핀, 야이로 딸의 소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