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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2020년 7월 19일 연중 제16주일

복음 마태 13,24-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24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물이 바위나 절벽을 만나면 멋진 폭포가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폭포를 보면서 밝은 표정을 짓습니다. 그런데 이 물이 냄새나는 하수구를 만나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인상을 쓰면서 이 물을 피하려 할 것입니다. 이렇게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느 병에 물을 담으면 물병이라 말하고, 이 병에 꽃이 담기면 꽃병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병에 쓰레기가 담기면 어떻게 말할까요? 쓰레기통이 됩니다. 

‘어디에 있느냐?’ 그리고 ‘무엇을 담느냐?’가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자기 존재를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자신은 어디에 있나요? 그리고 우리 마음에 무엇을 담고 있습니까?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온전하게 드러내고 있을까요? 

죄를 피해야 하며, 우리 마음 안에는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사랑을 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존재 가치가 올라가면서 이 세상 안에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가라지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이 영혼에 뿌려진 이들은 하느님 나라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악마는 이런 상태를 원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 안에 머무르고, 좋은 것만을 담을 수 있도록 가만히 두지 않지요. 그래서 태만으로 말미암아 무기력증에 빠진 듯 불신앙에 정복당하는 이들 가운데에 가라지를 뿌립니다. 좋은 것에 머무르지 못하도록 그래서 하늘나라에서 멀어지도록 계속해서 방해합니다. 그렇다면 이 방해 공작에 그냥 넘어가야 할까요? 

집주인은 종들에게 지금은 가라지를 거두어 내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이릅니다. 가라지를 거두어 내는 일은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느님도 이렇게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힘으로 악마를 이겨내고, 당신을 마음 안에 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할 수 있어야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하느님께서는 심판 날까지 기다리신다는 점을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사실 우리는 판단하는데 참으로 재빠릅니다. 남에 대해 확실하지도 않으면서 얼마나 쉽게 판단하고 단죄합니까? 그러나 하느님의 이 모습은 재빠른 판단보다는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확실치 않은 것은 심판 날에 하느님께서 판단하시도록 두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자신의 마음에 담고 있는지를 또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 안에 머물고 있는지를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내 인생에서 내가 제일 먼저 배웠어야 하는 것은 ‘나’의 올바른 사용법이었지만, 지금까지 그걸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걸 모르니 인생은 예측불허,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김연수). 

가라지의 비유. 

나와 연애하듯 살기


어느 책을 보니, ‘나와 연애하듯 살기’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와 연애할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고 그것을 함께 하지 않습니까? 또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다름 아닌 나라고 생각해보십시오. 즉, 나와 연애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쁘게 하고 있는가를 물어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나 자신에게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와 최고의 연애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연애할 때, ‘행복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렵고 힘든 순간에도 연애할 때를 떠올리면서 ‘행복했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에 대한 행복의 기억을 만들어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나와의 연애는 어떠하십니까? 이 연애가 시원찮으면 그만큼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가라지가 어떻게 다른지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