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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2020년 7월 18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복음 마태 12,14-21

그때에 14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아시고 그곳에서 물러가셨다. 그런데도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시면서도, 16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8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19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21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관계 나쁜 관계가 있을 뿐이다.”

사람 자체의 질이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언젠가 어떤 분으로부터 다른 누군가에 대한 비난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참 나쁜 사람이다.”라고 단정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난하는 대상은 제가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이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과 너무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분은 저와의 관계 안에서는 아주 좋은 사람입니다. 

관계를 맺지 않으면서 살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복잡한 것이 싫다며, 상처받기 싫다면서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또 관계를 맺지 않아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큰 착각입니다. 이 관계의 단절을 통해 ‘좋은 사람’ 한 명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관계를 먼저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따지기 전에 좋은 관계를 맺으려는 나부터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관계를 만들지 못하면서 세상과도 단절되게 되고, 결국 주님과도 단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들어지는 것은 ‘나’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맺고 계십니다. 그 비결은 사랑하는 이, 그리고 내 마음에 드는 이로 사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투지도 또 소리치지도 않습니다. 오직 하느님께 희망을 두면서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가셨습니다. 그 결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주님께서 우리와도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모습을 따르면 됩니다. 

주님의 사랑하는 이로 또 마음에 드는 이로 살면 됩니다. 주님께 희망을 두면서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관계를 생각하기보다 내가 얻어야 할 것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얻는 것이 있어야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내가 얻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좋은 관계에 있을 때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 관계에서 희망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함께 있을 때는 어떤 것 같습니까? 절대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지금 후회하고 있는 것은 함께하고 있지 않아서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떠어떠하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할 때, 그것은 실제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생각이다(스즈키 순류).

주님의 사랑하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행복


세계의 유명 대학에서 ‘행복학’ 강의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강의에는 많은 학생이 수강해서 듣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행복에 관한 연구를 정리해보면, 행복의 비결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첫째, 행복은 우연히 얻는 행운이 아니라 훈련과 습관으로 얻을 수 있는 삶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운동하기, TV 안 보기, 감사 편지 쓰기 등, 자신의 생활 습관을 바꿔서 행복해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영국 BBC 방송에서 행복 실험을 통해 ‘연습할수록 느는 것, 행복은 삶의 습관’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둘째, 행복은 삶에서 만나는 고통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즐거움만을 추구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스러운 것을 피하지 않고 제대로 받아들일 때 온다는 것입니다. 

결국, 행복은 사람의 훈련과 성장의 결과로 누리는 것이지, 뜻밖의 행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행복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며 성장하고 계십니까? 

주님과 함께 함이 진정한 행복의 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