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14,21-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22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자,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신학생 시절, 중고등부 학생들과 방학 때 캠프 갔던 기억을 해봅니다. 그때는 식사를 다 직접 해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체로 밥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버너를 이용해 코펠에 밥을 해야 했기 때문에, 밥물을 자기 생각보다 더 넣어야 맛있는 밥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집의 밥솥을 생각해서인지 물이 적어 설익거나 태울 때가 많았습니다. 또 많이 먹겠다는 욕심에 코펠 가득 쌀을 넣고서 밥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익지 않은 밥이 코펠 밖으로 넘치고 맙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밥을 제대로 짓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관계가 틀어지고, 때로는 가슴을 새까맣게 태우기도 합니다. 제대로 된 관계를 위해서는 알기 위해 노력해서 관계를 잘 지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뜸 들이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고, 생각보다 물을 더 넣는 ‘조금 더’의 노력도 있어야 합니다. 즉, 내 마음의 크기도 알맞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들어맞을 때 최고의 주님을 내 안에서 만날 수가 있게 됩니다.
무조건 알아서 해달라는 식의 무책임한 떠넘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는다면 불평불만을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만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해주십니다. 바로 주님의 거룩한 본성에 참여하는 사랑의 일치를 통해서 함께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세상을 떠나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며, 따라서 그분과 아버지께 사랑받는 이들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예를 우리는 많은 성인성녀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의 집에서 죄의 더러움을 씻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보호자, 곧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주님과의 관계를 더욱더 두텁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과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가 될 수 있도록, 진리의 영이기도 한 성령을 받아들여서 주님 알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노력이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줘서, 내 삶을 최고의 삶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꿈을 품고 무엇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협조자 성령.
어떤 삶이 더 멋진가?
17년 전, 세 번째 책을 출판할 때 출판사에서 이번 책에는 사진을 좀 넣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냥 텍스트만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좋다고 했지요. 그런데 사진작가가 제 모습을 많이 찍는 것입니다. 사진 찍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유명인도 아닌 평범한 사제인 저로서는 너무나도 부담이 되어서 사진작가에게 “저를 안 찍으면 안 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진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를 믿으세요. 그래야 사진이 잘 나옵니다.”
사진작가인데 어떻게 믿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저 자신을 믿지 못해서이지요. 자연스러운 것이 제일 좋다고 말하지만, 사진을 찍으려는 낌새만 보여도 곧바로 경직되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사진이 훨씬 나은데요?”라고도 말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 같지가 않습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제 모습을 찍어서 SNS에 올렸나 봅니다. 그 사진을 보신 분이 실제의 저를 보고 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실물이 훨씬 나은데요?”
사진을 보고 실망했는데 실제로 보니 괜찮다는 것이지요. 이 말을 듣고 나서 사진이 엉망이어도 괜찮다 싶었습니다. 실제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자신 있게 포즈를 취합니다. 엉망으로 나오라는 마음으로 말이지요.
사진은 사진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내 모습이고, 겉모습보다는 속마음이 아닐까요? 겉으로만 멋진 모습이 아니라, 사진에 찍히지 않는 멋진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은 주님을 알도록 도와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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