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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2020년 2월 19일 연중 제6주간 수요일|

복음 마르 8,22-2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22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23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는 앞을 쳐다보며,“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  눈에는 눈이라는 자세로 나간다면 온 세상의 눈이 멀어버릴 것이다(마하트마 간디).

죄에서 벗어나기.


요즘에는 우울증이 마치 감기처럼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삶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겠지요. 언젠가 어떤 형제님을 만나 자신이 느끼는 우울한 감정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작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해서는 안 될 일, 남이 알면 부끄러운 일, 그런 일을 하고 나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고 우울한 감정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졌고, 만사가 시들해지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추락하는 자신을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하시더군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하느님을 피해 숨은 것도 이런 감정 때문은 아닐까요? 그런데 이런 순간에서도 하느님은 우리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알아도 찾으십니다. 회개해서 다시 돌아오는 한 사람을 더 원한다며, 사랑으로 우리를 찾으십니다.

죄 자체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대신 내 죄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고 부르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 안에서 힘차게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