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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2020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 8,23-27

그 무렵 23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24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25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26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27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돈의 개념이 없는 아직 없는 아이에게 5만 원짜리 지폐와 크고 화려한 사탕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까요? 돈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크고 화려한 사탕을 선택할 것입니다(저도 어렸을 때는 이러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돈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성인에게 이 5만 원짜리 지폐와 사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했을까요? 당연히 지폐일 것입니다. 이 지폐를 통해서 사탕을 더 많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이 중요하다고 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신앙을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 이렇게 따져보면 어떨까요? ‘1천만 원’과 ‘미사 참석’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단, 1천만 원을 선택하면 미사 참석을 할 수 없습니다. 갈등이 생기지 않습니까? 

주님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분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들이 늘 먼저였던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주님의 가치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기에 그 가치도 당연히 알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주님께 굳은 믿음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 안에서 평화와 기쁨을 체험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에서 커다란 풍랑을 맞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커다란 풍랑에 허둥지둥 댑니다. 그에 반해 예수님은 편안히 주무실 뿐이었습니다. 사실 제자들의 대다수는 제자가 되기 전에 어부였고, 그에 반해서 예수님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배 안에서 누가 전문가입니까? 당연히 어부였던 제자들이 주축이 되어 지금의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겁을 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하면서 그 힘을 이미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주님이 참 하느님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세상 삶보다는 하느님 나라 안에서의 영원한 삶을 이야기해 주셨지요. 그렇다면 지금의 허둥지둥하는 모습은 주님을 제대로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직 이 세상의 삶을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파도에 흔들리는 배처럼, 그들의 마음도 흔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은 믿음으로 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주님 안에서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대의 꿈이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가엾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말 가엾은 것은 한 번도 꿈꿔보지 않은 사람들이다(에센 바흐). 

풍랑을 가라앉히신 예수님.



나를 위한 사람


어느 방송기자가 95세 생신을 맞이한 할머니께 물었습니다. 

“할머니, 지금 가장 갖고 싶은 게 뭐예요?”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셨습니다. 사람들은 95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의 할머니께서 과연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돈일까? 건강일까? 그런데 할머니는 간단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남자 친구”

단순히 이성을 원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수도 있겠습니다.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일 중요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내 이웃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내 외로움을 해결해 줄, 또 내 어려움을 풀어줄 나를 위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일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더 앞을 바라보십시오. 결국,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 역시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호숫가에서의 폭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