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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2020년 6월 15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책을 9권이나 출판했고, 매달 묵상 잡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또 인터넷에 20년째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서 글 쓰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겠다고 말씀하시지만, 점점 더 글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부족한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줘도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그런데 처음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릴 때만 해도 그렇게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나에 대해 ‘열심히 살고 있다’라는 특별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20년 전의 글이 훨씬 나은 글이었을까요? 자신감 넘치게 쓴 글이지만, 지금 읽어보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런 글을 어떻게 인터넷에 올릴 생각을 했냐며 부끄럽기만 합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지요. 우리 역시 많이 알면 알수록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겸손이 부족하다면 그만큼 앎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분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알면 알수록 주님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알면 그만큼 겸손해지는 우리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제시하십니다.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고, 천 걸음을 가지고 강요하면 이천 걸음을 가 주라는 말씀은 세상이 보여 주는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겸손의 길임을 보여 주십니다. 복수하는 삶도 아니고, 자신의 것만을 챙기는 삶도 아니고, 오히려 어리숙하고 미련해 보이는 삶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겸손의 모습으로 사랑을 철저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주님을 알게 됩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으며, 주님을 통해 참 행복의 길이라 할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겸손의 삶도 사랑의 삶을 외면하면서 철저히 세상의 논리를 통해서만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는 주님을 진정으로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냥 급급하게 지금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알기 위해 더욱더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지혜보다는 주님의 지혜를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미련하고 어리숙해 보이지만, 참 행복의 길로 갈 수 있는 길을 기쁜 마음으로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있게 됩니다. 

 

멈추지 말고 한 가지 목표에 매진하라.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다(안나 파블로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예수님. 

시간


지난 3월 말, 어머니께서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고령이신데 고관절 골절이 된 것입니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습니다. 폐렴에 빈혈, 여기에 폐에 물이 차서 상당히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소식을 듣고 강화에서 1시간 넘게 걸리는 병원까지 부랴부랴 운전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면회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면회가 제안되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위험한 순간은 넘겼다고 해서, 얼굴도 뵙지 못하고 다시 성지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병원에 갔는데 허탕 쳤다는 생각에 억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운전하는 동안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묵주기도를 바쳤던 것, 운전하며 어머니의 쾌유를 기원하는 화살기도를 계속 바친 것, 어머니와의 좋았던 추억을 생각했던 것 역시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점입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억울해할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결과에 이르지 못하면 시간 낭비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소한 일상도 나의 삶이며, 그 소소한 일상과 과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소중한 것입니다. 

죄로 기울어지는 시간 외에는 어떤 시간도 나쁘지 않습니다. 나쁘지 않은 시간을 나쁘다고 단정 짓는 순간, 내게 나쁜 시간은 참으로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 나의 삶을 구성하는 이 시간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집중한다면 얼마나 많은 유익한 시간이 내게 다가오는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가장 좋은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