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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2020년 6월 13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복음 마태 5,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평생 죽자 살자 일만 했던 어느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자신은 늘 일에만 매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모아둔 돈도 있고 시간도 많으니, 여생은 행복하게 가족과 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퇴직 후에 자기 생각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남편, 아버지의 권위는 하나도 없는 것 같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기만 했습니다. 

늘 꿈꿔왔던 가족이 함께 모여 거실에서 과일을 먹으며 화목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다들 바쁜지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는 시간도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시간만 많아졌고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결국, 이 형제님은 다시 일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평생 일만 해야 할 팔자라면서 말이지요. 

이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퇴직 전까지 가족이 화목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면 저절로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을까요? 가난해도 화목하며 서로에 대해 사랑을 주고받는 가정과 부유하지만 서로 불목하며 사는 가정 중에 누가 더 행복할 지는 굳이 질문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사랑이 늘 먼저였고, 사랑이 진리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은 늘 나중이고, ‘사랑이 밥 먹여주느냐?!’면서 거짓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늘 사랑의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거짓 맹세는 참으로 자주 이루어집니다. 물론 거짓이라고 하기도 뭐합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나중에, 봉사도 나중에, 믿음도 나중에, 희생도 나중에……. 늘 언제나 나중입니다. 그러나 그 나중에 오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결국, 나의 맹세는 거짓이 되고 맙니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라는 말씀은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할 사랑임을 분명하게 합니다. ‘나중에’에 포함되는 맹세가 아니라 ‘지금’ 시작되는 맹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중에’ 이루어질 맹세는 우리를 후회의 길로 이끌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루어지는 맹세는 우리를 행복의 길로 이끌어줍니다. 

자신이 하는 사랑의 맹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늘 뒤로 미루는 사랑이 아닌, 지금 실천하는 사랑,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따라 이웃들에게 기쁘게 전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을 때, 하느님 나라가 멀리에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거짓 맹세를 하지 맙시다. 


“너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어렸을 때 참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다 보면, 되고 싶었던 모습이 많았습니다. 

야구선수, 탁구선수, 과학자, 수학자, 선생님, 그리고 신부님도 있었습니다. 모두 되고 싶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현재 사제로 살고 있습니다.

꿈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즉, 어떤 꿈이냐가 중요합니다. 저의 경우, 단순히 신부가 되는 일회적 꿈이 아니라, 어떤 신부가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꿈이 없다고 합니다. 10대에는 공부하느라, 20대에는 스펙을 쌓느라, 30대에는 취업하고 경력을 쌓느라, 40대에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꿈을 꾸고 그 꿈을 구체화하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저 지금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늘 ‘나중에’를 외칩니다. 

꿈을 꾸기 힘들 정도로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나를 위해 꿈을 꾸어야 하지 않을까요? 새롭게 태어날 어떤 나를 만들어야 합니다. 

나의 꿈을 만들고 그 꿈을 구체화하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