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복음 마태 1,18-23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미국 심리학자 마크 쉔은 말합니다.
‘편안함에 길들여지면 불편함에 과민해진다.’
이 말에 큰 공감이 되었습니다. 갑곶성지에 처음 왔을 때인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는 할 일이 너무 많고 불편한 것도 많았습니다. 제가 직접 하지 않으면 대신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꾸역꾸역 일을 혼자서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6년 1월에 다시 갑곶성지에 왔습니다. 그동안 제 전임신부들이 많은 것을 해 놓았더군요. 직원도 많아서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이런 환경 안에서 저도 편안함에 길들여졌었나 봅니다. 영성센터를 전담했던 신부님께서 올해 본당으로 발령받아 간 뒤에, 성지뿐 아니라 영성센터까지 담당하다 보니, 그리고 봉안당까지 운영하다 보니 힘들다는 생각만 가득해집니다. 분명히 예전보다 훨씬 더 편안한데 말입니다.
작은 흔들림도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모두 편안함에 길들여 있을 때였습니다. 편안함에 길들여 있을 때는 감사한 지도 모르고, 모든 것을 당연히 누려야 할 것으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불편함에 굴하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은 다릅니다. 이 사람은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만족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을 지내면서 성모님의 삶을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참으로 행복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참으로 복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볼 때는 절대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불편함만 가득한 삶이었습니다.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들으면서부터 불편함의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인 요셉으로부터 배척을 당할 뻔하기도 했고, 결혼 전에 아기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공개적으로 돌에 맞아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인데도 불구하고 베들레헴의 초라한 마구간에서 예수님을 낳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산후조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에집트로 피난까지 가게 되십니다.
도대체 성모님의 삶 안에서 편안함이 있었을까요? 그런데도 불평불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라는 마음으로 불편함 속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는 믿음을 키워나가십니다.
우리 삶 안에 항상 편안함만 있을 수 없습니다. 분명히 불편함이 있게 됩니다. 그때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그 모범을 따라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불편함 안에서 커다란 만족과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의 큰 일이 우리를 죽이는게 아니다. 다른 사람이 실망하는게 무서워서 거절하지 못한 수천 개의 작은 의무가 우리를 죽게 한다(알랭 드 보통).
성모님과 어머니 안나 성인.
이미
이미 젖은 신발은
다시 젖지 않는다
이미 슬픈 사람은
울지 않는다
이미 가진 자들은
아프지 않다
이미 아픈 몸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이미 뜨거운 것들은
말이 없다
‘이미’라는 제목의 최영미 시인의 시입니다. ‘이미’라는 단어로 표현한 시인의 세계를 보게 됩니다. 무심코 썼던 단어 하나에도 여러 가지 깊은 뜻이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 각자는 어떨까요? ‘이미’ 많은 뜻을 간직하며 사는 우리입니다.
수원교구 손골성지 야외 십자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