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31일 성령 강림 대축일
복음 요한 20,19-23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입니다. 물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서로서로 존중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누구는 왕이 되고, 누구는 종이 되는 계급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진짜 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보입니다. 다짜고짜 반말하고, 아주 작은 것에도 꼬투리를 잡기도 합니다. 소위 갑질한다고 하지요. 이런 사람을 보면 그의 인격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한 가지만으로 그 사람을 온전하게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의 말을 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인격적으로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되면서 존경하게 됩니다.
가게에서 원하는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고 그 자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면 결국 자기만 손해입니다. 좋은 말로 해결할 수도 있는 것을 화부터 내는 사람은 서비스를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 아닐까요?
가장 낮은 자가 되신 주님께도 이렇게 소리를 치며 자신의 화를 쏟아부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과연 주님 앞에 갔을 때, 고개를 제대로 들 수가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문이 모두 잠겨 있는데도 방안에 나타나셨습니다. 문이 잠겨 있다는 것은 제자들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려줍니다. 예수님의 죽음 이후, 자신들 역시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가져다주었을 것입니다. 또 죄지은 사람이 고래를 뻣뻣하게 들 수 없는 것처럼, 주님을 배반했기에 그 사실 역시 두려움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문이 잠겨 있음에도 아랑곳없이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시어 평화를 먼저 빌어 주십니다. 그리고 육체의 부활이라는 증거를 위해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지요.
주님께서는 불안해하는 제자들을 평화로 거듭 위로하신 뒤에,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제자들은 이제 자기 뜻이 아니라 파견하신 분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파견하신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용서’였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아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의 숨으로 죄를 용서하는 영적 권능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세례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음으로 우리는 세상에 파견되었습니다. 파견하신 분의 뜻은 ‘용서’라는 사랑에 있음을 기억하면서, 남을 왕의 모습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파견하신 주님의 뜻을 충실하게 따를 때, 성령의 선물은 우리 안에서 더욱더 풍성하게 열매 맺게 됩니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르누아르).
성령 강림.
어떤 법을 지킬 것인가?
어느 본당신부가 레지오 단원에 대해 아쉬움을 이야기합니다. 레지오 단원들이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레지오 교본에 맞지 않는다면서 서로 다투는 모습을 종종 본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본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에 빠진 것이 아닐까 싶다고 아쉬워합니다.
사실 제일 편한 것이 법대로 사는 것입니다. 법이란 권력에 의해 강제되는 최소한의 사회규범이라고 합니다. 최소한의 사회규범이기에 지키려는 마음만 있으면 그리 어렵지가 않습니다. 또 모든 이가 함께 지켜나갈 때 더욱더 편안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법, 즉 사랑의 계명은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합니다. 내 마음의 상태까지 사랑으로 기울어져 있어야 하기에 지키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키기 쉬운 작은 법인 규칙만을 내세우면서 사랑의 계명을 어기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킵니다. “나는 법대로 사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세상의 법과 규칙을 뛰어넘는 주님의 법이 더 중요합니다.
주님의 법에 기초해서 생활해야 합니다. 더욱 주님과 가까운 관계,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의 삶을 우리 모두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