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다킹 신부

2020년 3월 31일 사순 제5주간 화요일

건들구리 2020. 3. 31. 11:27

복음 요한 8,21-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21 이르셨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22 그러자 유다인들이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니, 자살하겠다는 말인가?” 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24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25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26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27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28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신학교 처음 들어가서 어느 선배님 방에 놀러 갔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글쎄 이상한 책들이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토대가 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비롯해서 조잡해 보이는 복사판 책들이 꽂혀 있는 것입니다. 80년대 뉴스에 종종 나왔던 간첩이라는 증거로 제시된 불온서적이 이 선배의 방에 있었습니다. 

‘혹시 간첩이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혼란에 빠졌습니다. 물론 이 사회를 전복하기 위해 이런 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학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구해서 복사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막 신학교에 들어온 저로서는, 또 이제까지 강력한 반공교육을 받아왔던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때 불온서적으로 취급받던 책들이 모두 풀려서 깔끔한 디자인으로 다시 인쇄되어 판매되고 있습니다. 

생각의 자유를 침해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나와 다른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가 아닌 함께 하지 못할 사람을 가리는 사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에 죄인이라고 손가락질받던 사람들과 함께하십니다. 그들 역시 하느님의 자녀로 함께 해야 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끌 사람까지도 구원으로 이끄시는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그들의 믿음 없음을 보시고 떠나시겠다는 엄포였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 이렇게 닫혀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들을 이제 포기할 만도 합니다. 그냥 죄 속에서 죽으라면서 내버려 두시면 더 편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과 더불어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 줄 십자가에 관해 다시 말씀해 주십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구원으로 이끌려고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이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사람들과 얼마나 함께하고 있는지를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편협된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구원의 길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는 것이 아닐까요? 

 

※ 교육이란 알지 못하는 바를 알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지 않을 때 행동하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마크 트웨인).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굳은 믿음을 가지십시오

 

소리


언젠가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11시 30분입니다. 낮이 아니라 밤이었습니다. 너무 일찍 일어났기에, 조금 더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시계 초침 소리, 차량 지나가는 소리, 바람 소리, 개 짖는 소리.

그 소리가 저를 일어나라고 아우성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집중하면서 읽다가 문득 침대에서 들었던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소리가 제 주변에 있었지만, 집중하다 보니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안에서 나를 방해하는 많은 소리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집중할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러나 그 소리 자체에 집중하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들도 이런 소리가 아닐까요? 전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소리가 계속 곁에서 자신을 힘들게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 경제적 어려움, 판단의 혼란 등이 바로 나를 힘들게 하는 소리입니다. 이것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에 집중하지 못하기에 힘든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당신께 집중하라고 하십니다. 사랑에 집중해서 소리의 고통에서 벗어나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소리에만 집중하면서 못 살겠다고 말합니다.

 

꽃이 참 많이 폈습니다. 이 좋은 구경을 저만 하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