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다킹 신부

2020년 2월 22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건들구리 2020. 2. 22. 12:05

복음 마태 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요? 희망에 대해 전하는 옛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은 죄를 짓자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벌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과 함께 어떤 벌을 내릴지 회의를 나누다가 ‘희망’을 숨기기로 했습니다. 희망 없이는 세상을 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아예 없애는 것은 인간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해서 ‘희망’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숨기기로 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 희망을 어디에 숨길 것인가였습니다.

오랜 회의 끝에 희망을 인간 마음속에 숨기기로 했습니다. 인간은 모험 정신이 강하고 영리하지만, 마음을 보려 하지 않기에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우리 마음을 바라봅니다. 정말로 희망이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서 희망을 간직하고 힘차게 살아갈 수도 있고, 그 정반대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바라봐야 하지만, 많은 이가 바깥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합니다. 돈과 물질, 명예, 욕심과 이기심을 채워야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가고는 있지만, 희망 없이 어렵고 힘들게 살아갑니다. 희망 없이 무작정 앞으로만 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많은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암울한 시간을 보낸다는 요즘, 희망의 나, 기쁨의 나, 행복의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주님의 물음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의 마음 안에 살아 계신 주님이 계신 것입니다. 주님을 통해 희망을 간직할 수 있었고, 주님을 통해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힘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곧바로 “너는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내 마음 안에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대답처럼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만이 희망을 주시는 분이고, 그분만이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람의 얼굴을 바꿔놓듯이 습관은 인생의 얼굴을 점차적으로 바꿔놓는다 (버지니아 울프).

 

   사도좌에 앉은 성 베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