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다킹 신부

2020년 12월 4일 대림 제1주간 금요일

건들구리 2020. 12. 4. 11:04

복음 마태 7,27-31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8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눈먼 이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30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하고 단단히 이르셨다. 31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 지방에 두루 퍼뜨렸다.


제빵을 배우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빵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빵을 먹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기 생일 케이크도 먹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이 청년에게 누군가가 묻습니다. 

“너 빵 싫어하잖아. 그런데 빵을 만들어?”

이런 질문을 아마도 많이 받았나 봅니다. 청년은 그냥 시큰둥하게 대답합니다. 

“안 좋아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요.”

우리는 안 좋아하면 못한다고 단정 짓곤 합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저 역시 책 읽고 글 쓰는 것에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고 또 많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안 좋아했지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다 보면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하긴 누가 이런 말도 하더군요.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애초에 다르다.’

아무튼 많은 이가 한쪽으로만 판단하고 단정 짓습니다. 이 과정 안에서 의외의 결과를 늘 만나게 됩니다. 오히려 반대 방향에서 해결책이 나올 때도 얼마나 많습니까? 인간이 얼마나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지 못하는 자신을 믿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그보다 자신을 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켜줄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은 어떨까요? 이런 믿음을 통해, 하지 못하는 자신에서 벗어나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주님께서는 믿음에 대해 강조하십니다. 눈먼 사람 둘이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청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왜 치유를 받아야 하느냐?”라고 묻지 않으십니다. “너희가 치유 받으면 뭐가 좋은데?”라고도 묻지 않으십니다. 그저 이렇게 물어보시지요.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믿음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믿음에 대한 물음에 “예, 주님!”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자, 주님께서는 이렇게만 말씀하실 뿐이었습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주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만 있으면 불가능한 것도 가능한 것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 못하는 부족한 ‘나’라는 존재에서 벗어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생텍쥐페리).

 

수원교구 성지, 미리내 성지 성당.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


신학생 때 신부가 되면 이 몸이 부서질 정도로 정말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을 많이 했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저만 했을까요? 당시 제 동창들과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내가 신부가 되면 이렇게 살 거야.”라고 말했고, 모두가 이대로 실천했다면 이 땅에 성인 신부가 엄청나게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쉽고 편한 것만을 찾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처음으로 본당신부가 되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신학생 때 그렇게 되고 싶었던 본당신부였고 그래서 나름 정말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미사 대수도 늘리고, 고해성사도 하루도 빠짐없이 30분 이상 주었습니다. 성사 활동에 충실했고, 그러면서도 외부 특강과 방송 그리고 책도 출판했습니다. 이런 저를 향해 다른 신부들은 어떻게 말했을까요? 

“너 그렇게 살면 후임 신부는 어떻게 살라는 거니? 그 성당에 평생 살 것도 아닌데 적당히 살아.”

신부 되기 전에는 분명히 열심히 살라는 말을 선배 신부님들께 들었는데, 이제는 적당히 살라고 합니다. 무엇이 맞을까요? 치열할 정도로 열심히 사신 예수님, 왜 이런 모범을 보이셨을까요? 우리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수원교구 성지, 미리내 성지의 김대건 신부님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