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한잔의 여유

그리움이 오면

건들구리 2014. 7. 1. 21:33

그리움이 오면 / 도종환

바람이 불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그리움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아픔도 오겠지요
머물러 살겠지요
살다가 가겠지요

세월도 그렇게
왔다 같을 거예요
가도록 그냥 두세요



어떤 날 / 도종환

어떤 날은 아무 걱정도 없이
풍경 소리를 듣고 있었으면
바람이 그칠 때까지
듣고 있었으면...

어떤 날은 집착을 버리듯 근심도 버리고
홀로 있었으면
바람이 나뭇잎을 다 만나고 올 때까지
홀로 있었으면...

바람이 소쩍새 소리를
천천히 가지고 되오 는 동안 밤도 오고
별 하나 손에 닿는 대로 따다가
옷 섶으로 닦고 또 닦고 있었으면...

어떤 날은 나뭇잎처럼 즈믄 번뇌의
나무에서 떠나
억겁의 강물 위를
소리 없이 누워 흘러 갔으면
무념무상 흘러 갔으면...



흔들리며 피는 꽃 / 도 종 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곧게 세웠나니
흔들리면서 꽃망울 고이고이 맺었나니
흔들리지 않고 피는 사랑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서 피는 꽃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비바람 속에 피었나니
비바람 속에 줄기를 곧게곧게 세웠나니
빗물 속에서 꽃망울 고이고이 맺었나니
젖지 않고 피는 사랑 어디 있으랴

아프지 않고 가는 삶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반짝이는 삶들도
다 아픔 속에서 살았나니
아픔 속에서 삶의 꽃 따뜻하게 살렸나니
아픔 속에서 삶망울 착히착히 키웠나니
아프지 않고 가는 삶 어디 있으랴


가을 사랑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읍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읍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바람이 오면 ... 도 종환 


바람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그리움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아픔도 오겠지요. 

머물러 살겠지요. 

살다간 가겠지요.


세월도 그렇게 

왔다간 갈거예요 .

가도록 그냥 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