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 24,42-5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2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45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46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8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49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50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51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저는 아버지의 조기교육 탓이었는지 컴퓨터를 80년대 초반부터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가 점점 사람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던 90년대에 제게 문의를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컴퓨터 조립을 해달라는 사람도 많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해 달라는 부탁도 많았지요. 그런데 컴퓨터 전원을 켜도 화면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질문이 의외로 많은 것입니다.
고장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이 모니터의 전원을 켜지 않았거나, 모니터와 컴퓨터를 연결하지 않아서 화면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편리함과 재미를 주는 컴퓨터이지만 사용법을 모르면 결국 아무런 역할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기계만 사용법을 알아야 할까요? 우리 각자에 대한 사용법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복잡한 사용법을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기초로 우리 자신을 이 세상 안에서 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사용설명서를 꼼꼼하게 봐야 합니다. 이 사용설명서가 바로 기도, 묵상, 미사, 성경 읽기, 자선, 희생 등입니다.
나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지금 내 안에서 의미 있는 가치가 나오고 있지 못한다면 사용법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깨어 있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충실한 종은 주인이 올 때 깨어서 일하고 있는 종이고, 불충실한 종은 주인이 오려면 멀었다고 생각하면서 주인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종입니다. 깨어 있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인이 언제 올지를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주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먼저 채우려고 합니다. 자기 사용법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의 행동입니다.
나에 대한 올바른 사용은 세상 것의 만족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의 만족입니다. 순간의 만족이 아니라 영원한 만족이 되어야 합니다. 나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잘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 마련해주신 사용설명서를 꼼꼼하게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이야말로 깨어 준비하는 자의 필수 요건입니다.
나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꼼꼼하게 읽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성경, 기도, 묵상, 미사, 자선, 희생 등을 통해서 주님께서 주신 사용설명서를 잘 숙지해서 제대로 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종이야말로 가장 행복하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생애 최대의 자랑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섰다는 것이다(골드스미스).
깨어있어야 합니다.
두 마리의 늑대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멀고 먼 옛날, 어느 나라에 ‘흑백방리’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음속에 두 마리의 늑대를 키우며 살았지요. 하얀 늑대는 이해와 용서를 먹고 자랐고, 검은 늑대는 질투와 분노를 먹잇감으로 삼았습니다.
늑대들은 새끼들일 때에는 그럭저럭 잘 지냈으나 몸집이 커지면서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독차지하기 위해 검은 늑대가 하얀 늑대를 공격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하얀 늑대의 공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결국, 싸움은 어느 한쪽이 죽어야만 끝이 나곤 했습니다. 어느 쪽이 이겼을까요?
답은 더 많은 먹이를 먹고 자란 늑대였습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 마음에도 이 두 마리의 늑대가 사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늑대가 살아남았습니까? 내 마음의 힘센 늑대는 어떤 늑대입니까?
이해와 용서의 먹이만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성녀 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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