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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2020년 6월 2일 연중 제9주간 화요일

복음 마르 12,13-17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13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좋은 삶을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때 사람들은 ‘행복’을 떠올립니다. 행복한 사람이 좋은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행복’을 찾아 나서고 있는 우리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행복보다는 성공을 쫓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사소한 일상 안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돈과 물질, 지위와 명예 등 세상의 성공 기준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다 보면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행복이 아니라 성공만을 쫓고 있는 것입니다. 

편안한 쉼의 시간을 가지면서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에, 남에게 뒤처지지 않을까,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입니다. 이 역시 행복이 아닌 세상에서 바라보는 성공을 쫓는 것입니다. 

행복을 찾아서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매 순간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주님의 기준으로,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좋은 삶을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겉으로는 존경하는 체하면서도 음모를 꾸미고 있는 유다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은 황제에게 세금 내는 문제를 질문하지요. 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황제의 반역자라는 소리를 들을 테고, 내라고 하면 매국노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데나리온 한 닢에는 황제의 초상이 그려져 있지만, 우리 인간의 몸 안에는 하느님의 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초상을 찾아 주시기 위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으니,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양심과 영혼을 세상의 것들로부터 지켜내어서 자유로운 마음으로 하느님께 분명히 돌려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의 것만을 바라보면서 내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상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행복이 아닌 성공만을 쫓으면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2베드 3,14)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우리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초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참 행복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변화는 규칙과 전례를 부수는 데서 온다. 오늘날 이루어진 모든 발전, 그러니까 정말 혁신적인 발전은 전례를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데이빗 포크).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기도가 먼저입니다.


신학생 때, 그리고 신부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만 해도 기도의 힘을 잘 몰랐습니다. 사람들이 “학사님, 기도해주세요.”, “신부님, 기도해주세요.”라고 말하면,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기도하지만, 기도를 부탁한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떠맡기려는 심보가 아니냐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보다 적극적인 실천이 담긴 열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신부 생활을 20년 넘게 하다 보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나의 열정도 너무나 보잘것없음을 뼈저리게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열정이 담긴 노력과 실천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필요하지만, 기도가 먼저였습니다. 

솔직히 이제까지 기도보다 나의 열정만으로 밀어붙인 적이 많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결과는 언제나 기도가 먼저였습니다. 그래야 나의 일에 하느님의 뜻을 생각할 수 있기에 더 깊이 있는 삶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기도와 열정.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먼저입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