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18,1―19,42
요한이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입니다.
집착에 빠진 사람을 우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집착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더군요.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
사람에 대한 집착으로 누군가를 힘들게 만들고, 돈에 대한 집착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지나친 명예욕으로 그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집착이 좋은 방향으로 향하게 되면 열정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집착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유럽 성지순례를 가서 르네상스 시대의 빛나는 예술 작품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등…. 이 작가들의 천재적 능력도 있었겠지만, 엄청난 집착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집착이라고 말하지 않고, 열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나쁜 방향이 아닌, 바르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집착을 무조건 나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쁜 집착이 아니라 좋은 집착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스스로 기준을 가지고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주님의 기준입니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금요일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날이지요.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십자가로 짊어지십니다. 고뇌와 고통으로 얼룩진 수난, 폭력적인 죽음은 인간적인 삶의 부정적인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고문과 채찍질을 당하시고 가시관을 쓰시며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육체적 수난만이 주님을 아프게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의 배신, 교회의 반석으로 삼은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던 것, 그렇게 많은 사랑을 주었지만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소리를 치는 군중의 은혜를 저버린 행동, 종교지도자들의 악의적인 모습 등은 정신적 수난도 절대로 적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구원 계획을 받아들이십니다.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라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철저히 순명하십니다.
오로지 아버지 뜻에 따르려는 주님의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철저히 인간을 위해서, 철저히 인간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하느님 아버지 뜻에 열정을 가지고 따르고 있었을까요? 하느님 아버지 뜻보다는 내 뜻을, 즉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려는 집착만을 내세워서 열정 없이 사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역시 하느님의 뜻에 열정을 가지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순간적인 만족만을 가져다주는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영원한 만족을 가져다주는 십자가에 대한 열정만이 구원의 영광을 가져다줍니다.
삶의 의미를 찾은 자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프리드리히 니체).
주님 수난 성금요일입니다
겨울 사랑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민중 시인으로 잘 알려진 박노해 시인 ‘겨울 사랑’이라는 시입니다. ‘겨울’을 암울한 시대를 상징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의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픔과 상처를 보이는 겨울, 고난과 시련의 겨울, 그러나 포옹하고 향기를 내고 그래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겨울입니다.
오늘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주님 죽음이 진정한 희망의 겨울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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