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빠다킹 신부

2020년 12월 7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 5,17-26

17 하루는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갈릴래아와 유다의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도 앉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힘으로 병을 고쳐 주기도 하셨다. 
18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19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일 길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내고, 평상에 누인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보냈다. 20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21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22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23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24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에 걸린 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25 그러자 그는 그들 앞에서 즉시 일어나 자기가 누워 있던 것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26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어느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께서 옷차림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이제는 아무도 할아버지께서 자신의 외모에 신경 쓸 것으로 생각하지 않은데 말입니다. 그러자 어떤 분이 말합니다. 

“할아버지! 좋아하는 분 생겼어요?”

오래전에 아내를 잃고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인대학에서 정말로 마음에 드는 할머니를 만난 것입니다. 그분께 더 마음에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말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었습니다. 당연히 옷차림도 바꿨더니 사람들이 젊어진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할아버지의 모습에 ‘나이 들어 무슨 주책?’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의 큰 착각이 하나 있습니다. 나이를 들면 사랑에 빠지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더 큰 실수입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 늙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젊어지게 합니다. 몸에 활력을 주고, 긍정적인 마음을 줍니다. 따라서 죽기 전까지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늘 설렘을 가지고서 말입니다. 이 사랑은 이성 간의 에로스적인 사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누군가를 돕는 사랑의 실천은 사람을 젊게 만드는 것 이상의 커다란 변화가 동시에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 사랑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기보다는 욕심과 이기심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친구들이 친구인 중풍 병자를 데리고 와서 지붕을 뜯고 주님 앞으로 내려보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했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복음에서는 특별한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중풍 병자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중풍 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내려보냈던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서 중풍 병자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친구들은 중풍 병자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사랑했기에 예수님께 대한 믿음도 가질 수 있었고, 그 사랑의 마음이 놀라운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모든 병자와 죄인들에게는 그를 주님께 데리고 갈 사랑의 중재자가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이 사랑 중재자의 모습을 갖추면서 살고 계십니까?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때, 주님의 놀라운 기적도 함께 따라옵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몸도 내 몸같이 소중히 여겨라. 그리고 네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일을 네가 먼저 그에게 베풀어라(공자). 

 

수원교구 성지, 수원 성지 성당 

하느님은 언제나 3등입니다


예전에 ‘하느님은 언제나 3등입니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일을 뒤로 미루기만 했던 저 자신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할 수가 있었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또다시 하느님을 3등의 자리에 놓고 있습니다. 

자신의 우선순위 일등은 ‘내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리고 우선순위 이등은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다음에야 하느님 만나는 일을 하는 우리일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스스로 생각해보십시오. 하느님을 믿고 따른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 하느님을 몇 등 자리에 올려놓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하느님을 더는 3등 자리에 놓아서는 안 됩니다. 

 

>수원교구 성지, 수원 성지 순교현양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