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16,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3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4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5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6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7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중년 이상의 나이에도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중년을 넘어서면서부터 몸의 근력이 줄어들고, 심혈관 질환도 생기고, 여기저기서 아프다고 아우성을 칠 것입니다. 그래서 “무병장수하세요.”라는 말이 얼마나 대단한 말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유병장수는 많아도, 무병장수는 도저히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50년 넘게 사용을 했으니 예전 같지 않은 것이 더 당연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보다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 내가 아파야 해?”, “내가 왜 이런 고통 속에서 힘들어해야지?” 등의 말을 하면서 불만이 가득합니다.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하고 나약함을 인정해야 새로운 변화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이제까지 누렸던 욕심과 이기심만을 계속 드러낸다면 새로운 변화, 새로운 길은 내 앞에 절대로 펼쳐질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는 겸손만이 하느님의 손길을 인정할 수 있으며, 세상의 기준에서 나오는 모든 불평불만을 내 안에서 제거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불의한 집사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주인의 관점에서, 집사의 행동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주인이 재산을 낭비하는 집사를 쫓아내려고 하지요.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집사는 쫓겨날 때를 생각해서, 주인에게 빚진 사람을 불러서 빚을 깎아줍니다. 지금으로 치면, 서류조작을 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는 행동을 더 한 것이니, 그는 커다란 벌을 받아야 마땅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과 달리, 이 주인은 오히려 영리하게 대처했다면서 칭찬합니다.
고개가 갸웃거릴 것입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받아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재산의 낭비를 아까워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이 만들어지는 것을 더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집사의 예견과 사리 분별, 영리함을 배우라고 이르십니다. 우리 것이 아닌, 이 세상의 사라져 없어질 물질을 활용하여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들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욕심과 이기심만을 간직하고 있으면, 도저히 하느님의 뜻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겸손과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용의 마음만이 하느님 뜻에 맞춰서 미래를 준비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정직을 잃은 자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J.닐리).
대전교구 순교 사적지, 산막골
일과 돈의 상관관계
1)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
2)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못 버는 것.
3)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
4)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돈을 못 버는 것.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몇 번입니까? 당연히 1번일 것입니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것은 몇 번입니까? 당연히 4번이겠지요. 이렇게 가장 극단적인 1번과 4번을 제외하면 몇 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2번입니다. 잘하면 1번으로도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몇 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1번은 도저히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마 대부분 3번을 선택합니다. 문제는 이 3번이 아주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잘해야 돈만 버는 것이고, 잘못하면 4번으로 건너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순간에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한 번 더 생각함으로 인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대전교구 순교 사적지, 작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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