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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2022년 2월 20일 연중 제7주일

복음 루카 6,27-3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첫눈에 반한다.”

맞는 말일까요? 이런 운명적인 만남이 있다고 사람들은 믿습니다. 그런데 사실 사람들이 그 시작을 미화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로닝겐대학교의 플로리안촉 교수는 많은 연인이 서로에게 첫눈에 반하는 현상에 관해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연인들은 실제로는 서로 첫눈에 반하지 않았음에도 그랬다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마음에 온기를 더해가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그렇게 멋지거나 예뻐 보이지 않았음에도, 이내 현재의 좋은 감정을 기억의 빈틈에 채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 만남만을 찾으려고 하다가 결국 아무런 만남도 만들지 못합니다. 대신 서로 오랫동안 마음을 나눌 수 있는지, 서로 진심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야 진짜 운명적인 만남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계속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정적 마음으로 사랑을 멈추게 되면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만이 더 크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계속 사랑하면서 우리는 운명적인 만남을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과의 운명적인 만남도 주님께서 계속 사랑해주시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계속된 사랑을 특히 완벽한 사랑을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여라.”(루카 6,27)라고 하십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구약시대의 명령이었습니다. 여기서 이웃은 이스라엘 민족의 동족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이웃인 이스라엘 민족을 공격하는 원수들은 어떨까요?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라 생각했기에,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이 곧 하느님을 공격하는 것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없는 원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 원수를 미워하라는 명령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사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지 않는 민족들도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웃과 원수의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어느 누구만 사랑하는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이 아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증오와 분노를 없애는 방편은 사랑뿐입니다. 증오와 분노는 또 다른 증오와 분노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1독서에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을 제거할 기회를 얻었지만,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기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연관된 사람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혹시 내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그래서 원수 같다는 그 사람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무엇이 당신의 영혼을 노래하게 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낸시 설리번).